2014년 8월 2일 토요일

국가안보정책 : 연미화중(聯美和中)과 연미연중(聯美聯中)의 거리

21세기 들어서 국제정치의 판을 흔들 만큼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되자 
세계 각국이 이러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때로는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연합하여 견제하기도 하면서 부심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 출장길에 리커창 중국 총리의 영국 방문에 따른 뒷얘기가 언론에 크게 게재되었다. 

중국의 2인자 리커창 총리의 강력한 요구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알현에 성공하였고 
캐머런 총리와 오즈번 재무장관의 태도도 특별히 저자세였다는 지적이었다.

한편 미국은 현재 남중국해의 중·일 분쟁에 대해 일본 편에 서고 아베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는 등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힘의 재균형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세계 강대국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신장된 중국의 국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일까. 

내가 목격한 중국의 내부는 외부에 비춰지는 바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지난2013년  9, 10월 두 달 동안 중국 사회과학원 정책고문으로 초빙되어 베이징에 있었다. 
초빙된 이유는 당시 시진핑 정부가 추진 중이던 제2단계 개혁·개방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당시 나는 중국 10여 개 부처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중국 내부적 고뇌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당시 나는 강의를 통해 자본 개방을 너무 미루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국내 금융 인프라를 조기에 갖출 것을 주문하였으나 
그들은 미국 재무부의 세계 금융자본 통제로 중국의 경제주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였다. 
특히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4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동부·남부 해안 지역만으로 13억의 인구를 먹여 살린 비법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고 
기존의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의 유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노 모어 베이징 컨센서스(No More Beijing Consensus)’를 외치는 지식인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중국은 
내부의 두려움을 감추며 미국 등의 봉쇄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등 주변국들과 친화하고
러시아와 준동맹 수준의 관계 강화를 추진하는 등의 대외 팽창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이 이러한 대외 팽창정책을 선택하기에는 많은 제약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선, 공산당 일당 체제가 어렵게 관리·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적 배합 정치구조와 
경제 사회 내부에 퍼져 있는 위험요소는 막대한 비용을 유발할 것이다. 

중국의 지나친 해외자원 의존적 경제구조도 쉽게 견제당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주변 17개국과 친화하려 하지만 
과거 복속주의적 태도와 중화사상에 의해 오히려 주변국들로부터 강한 거부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내부 모습을 들여다보면 
중국의 팽창정책은 다소 과대포장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미·일 등의 세력 재균형 정책은 중국에 대한 사전 견제 성격이 강하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동북아시아에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미·일의 견제와 봉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있다. 

얼마 전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을 통해 보여준 중국의 태도에서 이미 암시하고 있듯이 
‘연미화중(聯美和中)’이라는 한국의 대외정책의 골격을 넘어서는 
더 깊은 관계를 원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비용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므로 매우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생명 줄이며 동아시아 산업협력의 고리인 부가가치 사슬의 이동경로는 
일본에서 시작하여 한국을 거쳐 중국과 동남아의 시계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실사구시적으로 판단할 때 
우리는 부가가치 사슬 흐름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와도 척을 지고 살 여유가 없다. 

특히 특정 국가와 더 가깝기 위해 어느 다른 나라와 멀어진다면 국익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NEAR 재단에서 2011년 발간한 ‘미·중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국의 외교 안보’라는 정책 보고서에서는 
앞으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 길은 ‘연미화중’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당시에도 일부 학자는 
한국이 머지않아 ‘연미연중(聯美聯中)’의 유혹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한국은 혜안과 균형감각을 가지고 중국이 갖고 있는 내적 위험요소를 고려하면서 
경제적 이익의 균형과 외교안보적 세력 균형 전체를 보며 
연미화중의 기본 입장을 계속 견지하도록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연미화중과 연미연중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정덕구 NEAR 재단 이사장·전 산자부 장관] 20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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