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안개
군사논평] 중국인민해방군 후근부 직속 공응보장국(总后勤部直属供应保障局:第62301部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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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중국인민해방군
후근부 직속 공응보장국(总后勤部直属供应保障局:第62301部队)은 중국군
내부에서는
통상적으로
봉태창고(丰台仓库)라고 불리는 대단위
후방군수기지이다.
연
면적이 240만 평방미터(약 73만 평)에 달하는 규모의 비축 시설과 보병연대
기준으로 약 100개 연대가
전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보급물자를 비축하고 있는 국가전략
단위 비축창고이다.
화물의
수납과 출고가 자동화된 입체창고와 화물기차가
창고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화물의 적재와 하역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입체창고
등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응급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고속 수납 장치와 화물을
보관위치까지 고속으로 운송하는 저장장치,
보관중인
화물의 위치와 내용 및 수량을 관리하는 내부 컴퓨터 망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부대의
규모는 사단급이다.
●구성
4개의
후방창고, 1개 통신연대, 1개 교도대대(教导大队), 1개
독립기차대대(独立汽车营)로 구성되어 있다.
예하부대는
북경시(北京市) 봉태구(丰台区), 해정구(海淀区), 방산구(房山区), 창평구(昌平区),
하북성
탁주시(河北省涿州市)에 산재하여 주둔한다.
●임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军委)와 총부(总部) 유관기관의 대단위 군사기관의 군수품(军需),
약재(药材),
차량(车辆),
시스템지자재(工程器材), 휴대용
무기류(携行武器装备) 등의 군용물자장비를 비축보관 관리하고
전시에
각 소요처에 필요물자를 적기에 공급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평시
임무는
-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军委)와 총부(总部)급 대단위 유관기관의
교통운수 업무를 보장하고
북경에 주둔하는 총부 직속기관의 전시 교통운수 업무를 보장한다.
-
총후근부 총부 유관기관의 통신을 보장한다.
-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军委)와 총부(总部)급 대단위 유관기관의 전문기능직
인원을 감정평가하고
총후군부 직속 단위의 신병훈련(新兵训练)과 각 분부(部分)에 근무할 전문기술
병사를 교육훈련한다.
-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军委)와 총부(总部)가 부여한(赋予) 비전쟁
군사행동의 긴급 후방지원임무를
보장한다.
-
북경지구의 긴급사태와 방공작전의 후방지원임무를 보장한다.
●
연혁
1935년
일본의 중국을 침략 시기에
당시 북경 봉태서북각(丰台西北角)을 수리하여 건축한 화북
최대의 군사 창고로
일명 서창고(西仓库)라고 불렸다. 당시
창고 면적은 3600묘(亩)였다.
- 묘(亩)는 중국의 토지 단위로 1묘(亩)는 666.7제곱미터이다.
1945년
일본패망 후,
서창고(西仓库)는 장개석의 국민당이 접수를 한 후 작전부대의
물자공급기지로 운용했다.
1945년
12월 섭영진(聂荣臻元帅)의 명령으로
동북야전군제5종대(东北野战军第五纵队) 부사령관 오서림(吴瑞林)이 국민당이
점거한
서창고(西仓库)를 점령하기 위하여 공격했다.
1948년
6월 4일 화북군구(华北军区)가 서창고(西仓库)를 접수.
1949년
7월 4일 봉태창고 관리처(丰台仓库管理处) 공식 발족.
화북군구 후근부 군수부(北军区后勤部军需部)에서 관리를 시작하였다
이 부서가 현재 总后直属供应保障局의 실질적인 전신(前身)이다.
1950년
10월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구(中国人民志愿军)의 후방지원
업무 수행했다.
당시 기록에는 무기(军械), 탄약(弹药), 약품(药品)등 총 622대
차량 분량의 군수물자와 23명의 인원이 참전하였고 2명이 전사.
1956년
8월 1일 총후군부(总后勤部)로 소속 편제 변경
1966년
6월 20일 부대 명칭을 봉태창고
관리처(丰台仓库管理处)를 봉태창고(丰台仓库)로 개칭
1968년
부대 대호(代号)를 后字225部队로 변경
1975년
부대 대호(代号)를 第59301部队로 변경
1976년
7월 28일 당산재지진(唐山大地震) 시 보관물자 456개 품목을 방출
1977년
1월 부대 명칭을 봉태창고(丰台仓库)에서
봉태창고 관리처(丰台仓库管理处) 다시 변경.
1979년
중국-베트남 발생, 보관물자 35,800톤과 병력 200여 명을 투입
1985년
12월 총후군부 직속(总后勤部直属) 분부(分部)로 편제 변경
1987년
창고의 기계화와 자동화 실시
제5기차연대(汽车第五团), 통신연대(通信团), 기술병훈련대(技术兵训练队), 통신교도대(信教导队)을
예하부대로 배속받음.
1989년
천안문 사태(天安問事態) 시
계엄군(戒严任务)으로 출동한 第27军, 第38军, 第54军, 第63军의 후방지원
임무 수행.
당시 동원 병력 12,260명, 동원 차량 727대, 공급유류 10,587톤, 각종
물자 21,450톤을 방출
1998년
삼강유역(三江流域) 대홍수 발생 시
총 104회에 걸쳐 151개 품목 1,124,000개 총 5,000톤 이상의 물자 방출.
1999년
내몽고 상도(内蒙商都)의 폭설 시 제5기차연대 물자수송 투입
2000년
10월 부대 대호(代号)를 第59301部队에서 第62301部队로 변경
2003년
11월 후군부 직속(总后勤部直属) 분부(分部) 해체 후
후근부 직속 공응보장국(总后勤部直属 供应保障局)으로 편제 변경.
2003년
사스(SARS) 발생 시
응급물자 보급, 운송, 소독, 의료인력 수송 및 통신업무 수행
2003년
9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利比里亚)에 제5기차연대 병력 460명 파병
2011년
11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军委)가 부대의
행정등급을
부사급(副师级)에서 정사급(正师级)으로 상향 조정
2014년
3월 23일 대형화재가 발생.
●시사점
중국은
현재 훈춘 국제경제지역에 대규모 물류기지를 건설 중이고 거의 완공단계이다.
중국
국무원이
2000년
훈춘 국제경제지역을 수출가공과 무역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승인했고,
2009년
11월 장춘, 길림, 두만강을 잇는 개방선도구 사업, 일명
‘장지투(長吉圖) 개발 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확정했다.
‘장지투
개발사업’은 2020년까지 연변자치주를 포함해 두만강
일대를 공업과 물류기지로 집중 개발한다는
것이
핵심대용이다.
이
사업의 개발면적은 73,000평방km로 북한
전체 면적의 70%dp 해당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이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훈춘
국제 물류기지(珲春国际物流园区)’이다.
‘훈춘
국제 물류기지(珲春国际物流园区)’는 총 면적 12평방km로
-
동북아 국제 물류 공단
-
동북아 국제 국제물류 상업무역성
-
총부경제봉사구
-
국제상업무역과 봉사구
-
종합물류 봉사구
-
오피스텔 생활 봉사구
-
공공기초시설 일식봉사구
-
물류상업산업창의 이전봉사구
-
종합봉사구’ 등 9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1)
훈춘시은
2016년 완공을 목표로 100억 위안(1조7천억 원)을 들여 관광과
국제교육 시설, 산업단지 등이
들어서는 동북아변경무역센터
건설을 2010년에 이미 착수했다.2)
‘훈춘
국제 물류기지(珲春国际物流园区)'는 내외적으로는
동북3성의 물류기지인지만
중국인민해방군
내부에서는 한반도
유사 시를 대비한 후방군수지원기지 역할을 할 것 이라고 한다.
즉
‘훈춘 국제 물류기지’는
인민해방군
총후근부가 깊숙하게 개입하여 전시
심양군구의 종합군수지원기지로 활용하려는
이중목적으로
가지고 개발하는 것이며, 여기에
북한의 급변사태를 포함한 한반도 유사 시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직속의 북경봉태창고(丰台仓库)의 규모와 시설 그리고 관리체계에
대한
정확한
현황조사가 이루어야 한다.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직속의 북경봉태창고(丰台仓库)는가
‘훈춘
국제물류기지’의 운용을 추론할 수 있는 바로메타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인민해방군이
한반도 유사 시 개입할 경우
중국군의
군수보급로 차단과 보급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한반도
유사 시
군사적
개입이 확실한 중국군의 보급체계에 대한 이해와 대응책이 적극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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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변일보 2011.9.6 “훈춘 국제물류기지 건설 적극 추진”
2)
연합뉴스2 2010.7.18, “中 동북 물류거점 훈춘 무역량 급증”
[아침안개]
201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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